[인생] 9강 돈이냐? 생명이냐? 록펠러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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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091회 작성일 20-05-03 18:14본문
돈을 선택했을 때 록펠러는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생명을 선택했고, 이를 통해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얻었다.
돈이냐 생명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돈을 선택한다면, 생명은 자연스럽게 스러진다. 그러나 생명을 잃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서른셋의 젊은 나이에 이미 백만장자가 되었다. 43세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회사 스탠더드 오일을 세웠다. 그렇다면 53세의 록펠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53세의 록펠러는 뜻밖에도 수심에 싸여 괴로워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격무와 극도로 긴장된 생활은 조금씩 그의 건강을 잠식해갔다. 록펠러의 자서전을 쓴 존 위클러는 당시의 록펠러는 마치 "산송장" 같았다고 말한다.
록펠러는 53세 때 특이한 소화불량성 질병을 앓았는데, 이 때문에 머리카락은 말할 것도 없고 눈썹과 속눈썹까지 다 빠져버렸다. 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록펠러의 병은 일종의 신경성 탈모증이었다.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져서 한동안 두건을 서야 했고, 나중에는 500달러를 들여 은색 가발을 만들었는데 죽을 때까지 이것을 착용했다고 한다.
록펠러는 원래 아주 건강했다. 농장에서 자란 록펠러는 어깨가 떡 벌어지고 매우 건장했을 뿐더러 걸음걸이도 힘차고 당당했다. 그러나 53세가 된 록펠러의 얼굴은 할아버지나 다름없었다. 록펠러는 세계 최고의 갑부였지만 그가 먹는 음식은 아주 간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과 다를 바 없었다. 록펠러가 일중리 동안 벌어들이는 돈은 100만달러 이상이었지만 그의 일주일 식비는 2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의사가 그에게 칼로리가 아주 적은 비스킷 두세 쪽만 먹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의 피부는 마치 주름지로 포장한 듯 윤기를 잃어 버석거렸다.
왜 이렇게 상황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을까? 고혈압과 긴장된 생활에서 비롯된 스트레스가 주요인이었다. 이것은 명백한 자업자득이었고, 그는 자칫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뻔했다. 23살의 록펠러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무섭게 돌진했다. 록펠러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 그는 돈버는 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면 전혀 웃지 않았다." 고 말한다. 그는 돈벌이가 되는 정보를 얻은면 흥분해 모자를 집어던지고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그리고 만약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는 날이면 병이 났다.
한번은 그가 4만 달러 분량의 곡물을 사들인 적이 있었다. 이것을 선박으로 오대호를 거쳐 운반할 예정이었으나 어떤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보험금 150달러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날 밤 오대호에 거센 광풍이 몰아쳤다. 그 밤 내내 록펠러는 매우 당황하며 배에 실린 곡물이 광풍에 날려 호수에 잠기거나 해서 큰 손실을 보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다음날 아침 그의 사업 파트너이 조지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초조하게 사무실 안을 왔다갔다 하는 록펠러를 발견했다. "어서오게! 어서 와!" 록펠러는 너무 긴장하여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보험을 들을 수 있을까? 지금 당장 보험회사에 가서 보험을 들어야겠네."
그래서 조지는 곧바로 보험회사로 달려가 보험에 가입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조지는 조금 전보다 더 초췌해진 록펠러를 발견했다. 조지가 보험회사에 간 사이 곡물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전화를 받았고, 곧 보험금 150달러를 낭배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록펠러는 자신이 어리석게 행동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너무 쉽게 돈을 벌었다며 계속 투덜거렸다. 그의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졌고 홧병이 나 앓아눕기까지 했다.
상상이 되는가? 당시 록펠러의 회사가 일년동안 벌어들이는 돈은 50만 달러가 훨씬 넘었는데, 그는 겨우 150달러 때문에 앓아 누운 것이다. 록펠러는 백만장자이면서도 하루 종일 돈이 허투루 쓰이지는 않을까, 손해를 입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온통 돈에만 신경을 쏟았다. 이러했으니 록펠러가 건강을 잃은 것도 당연하다. 록펠러는 운동도 하지 않았고, 어떤 오락이나 유흥도 즐기지 않았다. 영화도 보지 않았고, 카드놀이도 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파티에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록펠러는 펜실베니아 주 유전 지역 주민들에게 큰 원한을 사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동상을 무너뜨려 교수형에 처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사람들은 그의 동상을 무너뜨려 교수형에 처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사람들은 가짜 록펠러의 목을 노끈에 묶어 매달아 놓고 채찍질을 해댔다. 록펠러의 사무실에는 그를 증오하고 저주하는 내용의 협박성 편지가 산더미 처럼 쌓였다.
록펠러는 늘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녀야 할 정도였지만 사람들의 증오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걸로 내 사업이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저주를 하든 증오를 하든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역시 사람이었기에 언제 까지고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의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얼마 후 록펠러는 자신의 내면에 자신이 싸워야 할 새로운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 신체의 이상을 느꼈을 때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쉽게 떨쳐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불면증, 소화불량, 탈모증까지 이어지자 더는 버틸수가 없었다. 더이상 자신의 신체에 나타나기 시작한 불길한 징후를 외면할 수 없어 의사를 찾아간 록펠러는 최후의 통첩을 받았다.
록펠러는 돈, 사업, 생명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해야 했다. 의사는 록펠러에게 즉시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퇴직하지 않을 경우 이대로 생명의 나무가 말라가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록펠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규칙을 정해주고 반드시 엄수하도록 했다.
첫째, 모든 걱정과 고민을 털어버려라.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절대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마라. 둘째, 여유를 가져라.긴장된 신체를 풀어줄 수 있는 실외 운동을 즐겨라. 셋째 식사는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만큼만 하라. 더 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바로 식탁에서 일어서라.
록펠러는 이 세가지 규칙을 철저히 지켰고, 퇴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을 되찾았다. 그는 이제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화초를 키우고, 이웃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하고, 카드놀이도 즐기는 등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했다. 위클러는 " 록펠러는 수많은 근심걱정으로 불면증에 시달린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뒤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기록했다, 또한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록펠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떻게 하면 돈을 벌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신이 가진 돈으로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록펠러는 자신으 재산을 세상사람들과 함게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가 한 교회에 거액을 기부하자 뜻밖에도 미국의 모든 교회에서 "부정한 돈"은 받을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기부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느날 미시간 호 근처에 있는 한 작은 대학교가 재정나으로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록펠러는 이 학교에 숩ㄱ만 달러를 아낌없이 기부했다. 이것은 오늘날 미국의 명문대로 자리잡은 시카고 대학교의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또한 그는 미국 내 흑인들을 지우너하는 데에도 적극 참여하여 많은 흑인 대학생에 금전적인 지원을 했다 그의 기부 활동 중 가장 빛나는 없적은 십이지장충박멸 운도을 지원한 것이다. 당시 십이지장충병 전문가인 찰스 윈슬로는 "남부 여러 주의 최대 재난은 십이지장충병입니다. 환자 한명당 50센트의 약값만 있으면 치료할 수 있지만, 지금 어느 누가 이렇게 많은 돈을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소연 했다. 찰스의 발언은 곧 록페럴의 관심을 이끌어냈고, 그는 남부 여러 주에서 십이지장충병을 박멸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의 기금을 내놓았다. 더 나아가 그는 록펠러재단을 설립하고 전세계에서 각종 질병을 퇴치하는 데 앞장섰다.
이후 록펠러 재단은 전세계를 종횡무진했다. 세계 어딘가에서 어떤 이상주의자가 갖가지 운동을 벌이다가 자금 문제로 곤경에 처하면 록펠러 재단은 언제나 이 인도주의적 개척자들을 지원했다.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는 과학자나 대학을 세우려는 교육자, 질병 퇴치에 힘쓰는 의사들이 진행하는 공익 사업이 바로 그것이었다.
록펠러의 금전적인 도움으로 인류는 페니실린을 개발하는 등 수많은 기적을 이루어 냈다. 페니실린이 없었던 시절에는 소아마비에 걸린 아이 5명 중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은 이 병 때문에 목숨을 잃을 일이 없어졌으니 전세계의 부모들은 모두 록펠러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그 밖에도 말라리아, 페결핵, 유행성 감기, 디프테리아 등의 질병 치료법도 록펠러의 지원을 받아 개발되었다.
그렇다면 록펠러 자신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 났을까? 그는 기부활동을 통해 무한한 기쁨을 맛보았다. 세상사는 기쁨을 새로 알게 되었고, 스러져가던 생명을 다시 얻었다. 어떤 이는 "만약 스탠더드 오일 사가 1900년 이후 아직도 비난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큰 착오다."라고 했다. 그 만큼 록펠러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 그는 매우 행복했다.
돈을 선택했을 때 록펠러는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생명을 선택했고, 이를 통해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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